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의외의 결과였다. 많은 이가 힐러리의 당선을 예상하였고, 또 그렇게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힐러리의 낙선만큼이나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점은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으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 질서가 펼쳐지리라는 전망 때문일 것이다. 미국적 파시즘으로까지 명명되는 트럼프의 집권은 보호주의 무역으로의 회귀, 동맹에 대한 엄격한 상호주의 원칙 등, 이른바 미국의 명시적 국익을 기반으로 하는 대외 정책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그 위세를 떨치는 미국이기에 트럼프 시대에 펼쳐질 외교정책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 외교정책이 세계 질서 확립과 동맹국의 이익을 위해서 늘 헌신적이지는 않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그동안의 미국 외교정책은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다른 일반 국가의 외교정책 기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의 외교정책 역시 미국 외교정책의 (또 다른) 전통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다 할 것이다. 즉 미국 외교정책의 기저는 자국 이익의 실현이며, 다만 트럼프는 그것을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세평이다. 마치 국내에서 노골적인 인종주의적 공약을 내건 것처럼 국제사회에서도 다른 국가의 입장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미국에서 백인의 입장을 대변하듯,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의 입장만 대변할 것처럼 보인다.
실상 미국 외교정책의 역사적 전통 중으로 하나로 알려진 먼로주의는 미국의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가 1823년 당시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 거부를 천명한 것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미국외교정책의 고립주의적 전통으로 알려진 이 주장은 미국이 유럽 정치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니, 유럽도 아메리카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당시 유럽의 간섭을 배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유럽 열강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인 미국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한 것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개입과 팽창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것이 많은 국제정치학자의 지적이다.
미국의 외교를 지배하는 다른 축은 미국적 '예외주의'라 할 것이다. 거칠게 정리한다면, 이 입장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봉건제를 경험하지 않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라는 역사적 경험,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선도자라는 신념 등이 결합되어 미국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예외주의는 세계 질서의 안정을 위해서는 패권국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어져 '패권안정론'과 같이 미국의 패권국 지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미국식 (절차적) 민주주의가 국가들 사이의 이견을 좁혀나가기 때문에 갈등보다는 평화를 고양한다는 '민주평화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현실주의적 입장(패권안정론)이건, 자유주의적 입장(민주평화론)이건 상관없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선도적인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볼 때, 트럼프 외교정책의 기저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 원칙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원칙에는 고립주의와 예외주의가 교묘하게 동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외침은 미국이 세계의 지도국 위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예외주의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며, 타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 자제와 동맹국과의 상호주의 강조는 고립주의적 전통을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니다. 즉, 트럼프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보다 노골적으로 분명히 하고 있다 하겠다. 다만 트럼프의 외교정책 자체가 아직은 구체적인 각론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국내문제에 선거 전략을 집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자신의 구체적인 외교정책을 체계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천명될 그의 외교정책 각론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시대에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어떤 것이 될까? 지금 현재로는 속단하기에 이르다. 주한미군의 분담금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고, 북한 문제에서 미국이 더욱 강경한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다만, 미국 외교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정을 볼 때 신속한 전 국가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래저래 식물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기다리고 있는 복잡한 작금의 국내 정치 사정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다.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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