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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야기> 박상진 교수의 단테 순례

송고시간2016-12-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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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별,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라"


"자기의 별,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라"

박상진 부산외국어대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박상진 부산외국어대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부산=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는 13~14세기 이탈리아 시인이자 철학자, 정치가이다. 그는 중세에서 근대로 향해가는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영원불멸한 대서사시 ‘신곡’(神曲)을 남기며 시대의 물음에 응답했다.

‘신곡’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단테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아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700여 년 전에 쓰인 이 작품은 지금도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현대인에게 큰 울림을 전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문학 이론을 전공한 박상진(52) 부산외국어대 만오교양대학 교수는 책과 강연을 통해 단테의 ‘구원의 순례’에 동참하게 하고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그는 연합이매진 12월호와 인터뷰에서 단테의 순례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끊임없는 변화가 있다고 강조한다. 순례를 마치고 변화돼 돌아온 단테에게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단테는 방향을 알려주는 별 같은 존재라는 단테 전문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봤다.

-- 단테와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 솔직하게 원래 관심이 없었어요. 부산외국어대 이탈리어과 교수로 있던 2002년쯤 서해문집 출판사에서 단테의 ‘신곡’을 학생용으로 쉽게 풀어서 내자는 제안이 왔어요. 마침 문학 이론에 싫증이 났고 어떤 인물이나 작품의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차여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단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막상 ‘신곡’을 짧게 줄이려고 하니까 도저히 줄여지지 않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전체를 번역했죠. 2005년에 서해문집에서 책을 내고, 또 2007년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신곡’을 출간하게 됐죠. 그렇게 단테와 처음 만났고, 그때부터 단테에 깊이 빠졌습니다.

-- 단테의 어떤 부분에 끌렸나요?

▲ 단테는 많이 생각하게 해요. 생각을 쥐어짜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다 보면 자신과 다른 작가, 예술 작품 등 여러 가지가 생각나죠. 저는 ‘보편적’이란 단어를 쓰고 싶습니다. 그의 글은 모든 시대, 모든 사회와 연관돼 있고 새로운 의미로 생장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700년 동안 계속해서 살아남은 것이 이를 증명하죠.

고전은 살아남은 작품입니다. 사람들이 고전을 왜 읽을까요? 시대마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감동이나 메시지를 주니까 그렇죠. 고전은 시대에 맞게 재해석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신곡’은 이런 고전의 정의에 부합하는 작품이죠. ‘신곡’만큼 저를 붙드는 작품은 없었어요.

-- 단테는 어떤 인물인가요?

▲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거대한 과도기에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사람이죠. 단테는 시대에 대한 응답 능력이 뛰어났어요. 변화를 잘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했죠. 문학, 철학, 언어, 종교, 정치, 행정 등 다방면에 걸쳐 시대의 요구에 정확하게 응답했어요.

예를 들어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라틴어가 대세였고 이탈리아어는 하층민이 사용하는 언어였어요. 단테는 ‘속어론’이란 책을 쓰면서 이탈리아어 사용에 대한 이론을 뒷받침한 후 대표작 ‘신곡’을 이탈리아어로 썼죠. 당시 이런 일은 대단한 결단이자 위험한 모험이었죠. 비약하자면 단테는 거의 ‘이탈리아의 세종대왕’이었던 셈이죠.

또 황제와 교황 간 권력 투쟁 상황에서 ‘제정론’이란 정치학 저서를 쓰며 조율을 제시했고, ‘향연’을 통해서는 많은 철학적인 문제를 쉽게 전달하려고 했어요. 단테는 지배계층의 편에 선 계몽주의자가 아니라 민중의 시선에서 세계관을 구축하려 한 지식인이었죠.

진보적인 청년 단체를 결성하고 활동한 것에서 엿볼 수 있듯 실천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는 “실천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자들이야말로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갈 수 있다”고 했어요.

박상진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박상진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 단테가 활동한 피렌체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 피렌체는 당시 거대한 변화의 중심지였죠. 단테는 그곳에 모인 시인, 철학자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었어요. 또 단테가 사랑한 사람이자 신곡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인물로 나오는 베아트리체가 현실 속에서 영감을 준 공간이었죠.

베아트리체는 청년 시절 사랑의 대상이자 영감의 원천이었어요. 그녀가 죽으면서 문학에 대한 사랑은 철학에 대한 사랑으로 옮아갔죠. 철학을 바탕으로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고, 정치에 입문해 10년도 안 돼 피렌체의 최고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죠. 그는 정치, 행정, 외교, 군사 등 많은 측면에서 성공을 거뒀죠.

하지만 1301년 정쟁에서 패해 추방당하고, 1321년에 죽을 때까지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하는 운명에 처합니다. 이 시기가 단테에게는 가장 불행했겠지만 우리에게는 굉장히 다행스러운 시간이었죠. 단테는 바로 이 시기에 주옥같은 작품들을 썼어요.

-- 단테가 ‘제정론’에서 주장한 것은 무엇인가요?

▲ 이탈리아는 당파들이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고, 도시 간의 대립도 심했어요. 단테는 교황파의 일원으로 활동했죠. 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죠. 추방된 후 그는 ‘제정론’을 써요. 한 분파의 입장으로는 평화롭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기가 어려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단테는 모든 권력의 대립을 조절할 수 있는 원리가 무엇일까를 탐사하죠. 그리고 양의 발굽 형태가 가장 적절하다고 합니다. 당시 대표적인 권력은 황제와 교황이었어요. 어느 한쪽을 편들어서는 대립이 절대 끝나지 않는다고 본 거죠. 두 권력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때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 거죠.

-- 단테는 세계시민적 사고를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국수주의 물결이 일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세계화는 힘 있는 몇몇 국가가 정치ㆍ경제ㆍ문화적으로 나머지 국가를 지배하는 형태죠. 그런 것이 좀 더 심화한 게 아닌가 싶어요. 문제는 획일화죠. 정치, 경제, 문화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에 일방적이고 획일화된 영향을 깊숙하게 주는 것이 문제죠.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이후 단테가 유명해지자 피렌체에서는 돌아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단테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활동한 피렌체 시민이지만 피렌체만을 위해 일할 수 없다”하며 거부하죠. 일할 대상은 피렌체란 한 지역이 아니라 유럽 전체라고 생각한 거죠.

단테의 세계시민적 사고는 국가를 전부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국경은 존재하지만 아주 유연하게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국가 간에 자유롭게 교류하고, 수평적인 관계에서 대화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너는 틀리고 나만 맞는다는 것은 결국 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어요. 전 세계적인 국수주의 물결은 반(反) 지성주의가 판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보편적인 사고와 실천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단테가 다양한 문화 영역에 영향을 미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첫째는 삶, 죽음, 죽음 이후의 세계 등 본질의 문제를 깊이 있고 다채롭게 들여다봤기 때문이죠. 미적으로 굉장히 뛰어나고 사실적이기 때문에 호소력이 클 수밖에 없어요. 어떤 예술가라도 영감을 받지 않을 수 없죠. 최근 개봉한 영화 ‘인페르노’도 ‘신곡’에서 소재를 빌려온 경우죠.

‘신곡’에서 애욕의 죄를 지은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에 대한 부분을 읽다 보면 벌을 받는 방식이나 감정 묘사가 너무도 섬세하고 사실적이어서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요. 이 에피소드에 대한 그림이 100개가 넘는 이유죠.

또 ‘신곡’은 시대가 달라지면 거기에 맞는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를 던져줘요. 그 정도로 유연하고 포용력이 있죠. 다른 사회나 시대마다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 단테의 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책을 보는 박상진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책을 보는 박상진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신곡’의 원제는‘La Comedia di Dante Alighieri’(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입니다. 어떻게 신곡이란 제목이 붙은 겁니까?

▲ 서양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선 일본인 의사이자 번역가인 모리 오가이(森鷗外, 1862∼1922)가 붙인 제목인데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신곡’을 깊이 있게 연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붙인 것으로 보이기도 해요.

‘신곡’은 ‘거룩한 노래’라는 뜻일 텐데, 단테 자신이 붙인 제목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였어요. ‘신곡’이라는 번역어는 단테가 붙인 원래의 제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지요.

우리는 단테가 제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을까 생각해야 해요. 우선 ‘코메디아’라는 말은 우리가 ‘희극’이라고 부르는 것과 상당히 다릅니다. 단테는 ‘코메디아’라는 용어가 신과 인간의 합일을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간단히 말해 단테는 신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발걸음, 그리고 그 끝에서 성취하는 인간의 구원을 ‘코메디아’라는 용어에 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해석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저는 단테가 신의 섭리보다 인간의 의지와 실천을 더 강조하는 것 같아요.

이와 함께 ‘단테 알리기에리’라는, 자신의 이름을 제목에 넣은 이유도 중요합니다. 단테는 인간으로서 의지와 실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이를 통해 독자들은 단테와 함께 구원의 순례를 떠나면서 인간을 둘러싼 많은 문제를 생각하고 논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경험을 나눈다는 식의 설정은 독자들이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단테와 함께 걷는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신곡’은 어떤 작품입니까?

▲ 신곡 전체는 단테가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에게 나아가는 기독교의 구원으로 보면 안 돼요. 여정의 끝에서 만난 것은 바로 이전과는 다르고 새로워진 단테 자신이거든요. 하느님도 길잡이 중 하나이지 궁극적인 목적지는 아니라는 거죠.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무엇입니까?

▲ 단테가 지옥에서 만난 스승 라티니가 “너의 별을 따라가거라. 그러면 너의 천국에 닿을 것이다”고 얘기하는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다른 별이 아닌 바로 ‘너의 별’이죠. 주어진 별이나 공동의 별이 아니라, 자신의 별을 만들어 그것을 향해 나아가면 이상에 도달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 갇혔다면 ‘신곡’이 지금까지 이렇게 내려올 수가 없었겠죠. 문학은 종교를 초월합니다. 당시 미술에서는 조토 디 본도네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화풍을 보여줬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을 철학과 결합했어요. 단테도 이런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겠죠. 거대한 변화의 시대에 적절하게 반응한 거죠. 반응은 지식인의 책무입니다.

-- 단테의 순례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 단테는 중간중간 “나는 이 모든 것을 틀림없이 기억하리라”고 말합니다. 기억하는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거죠. 자기 혼자 새롭게 변화해서 혼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깨달음을 지니고 돌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들려줄 것이다”라고 한 거죠. 자신의 순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다른 이들을 순례에 동참시키고, 자기는 다시 새로운 변화를 위한 순례에 나서는 거죠.

‘신곡’은 이렇듯 기독교적이 아니라 불교의 ‘윤회’에 더 가까워요. 시대와 사회를 뛰어넘어 계속해서 변화하죠. 단테는 700여 년 전 죽었지만 그는 텍스트 안에서는 살아있어요.

특히 ‘돌아온 단테’라는 것에 주목해야 해요. 그는 천국에서 이렇게 얘기하죠. “난 돌아갈 것이다. 다른 목소리와 다른 양털을 지닌 시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얘기를 들려줄 것이다.”

-- 단테가 생각하는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 천국은 선(善)의 집합체가 아니에요. 천국이 선으로만 뭉쳐진 곳이라면 배타적인 곳일 거예요. ‘멸균된 천국’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는 균이 없이 살아나갈 수 없어요. 단테는 천국이 완벽하게 순수한 곳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천국이 지옥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조화로움입니다. 지옥에서는 변신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야말로 밀폐되고 배타적인 곳이죠. 반면 천국은 열린 공간이에요. 지옥에 있는 것까지 포용하는 공간이죠. 천국의 본질을 지키면서 지옥을 조절해나가야 하는 거죠.

단테는 천국의 빛깔을 뻘겋고 퍼렇게 표현하면서 천국이 결코 순수하고 배타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천국적이지 않은 것과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비로소 천국이 될 수 있다는 거죠.우리가 정의를 실천한다고 할 때도 정의롭지 않은 것과 끊임없이 관계하면서 그것들을 교정하고 조절해야 해요. 정화해 가는 과정이 천국이자 행복인 거예요.

-- 단테는 행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 우리는 현실에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룰 의무가 있어요. 이런 공동체를 위해 적절하게 참여한 이들은 천국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죠. 이렇게 참여하는 가운데 개인의 행복도 보장된다고 보는 거예요. 혼자 잘 살려고 하는 것보다는 주변을 돌아보는 거죠.

자기 확신에만 가득 차서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가는 것은 천국도, 행복도 아니에요. 끊임없이 의심하고 비판하고 교정해나가야 하고 자기 자신도 변해가는 거죠. 행복은 아주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 그런 것을 향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단테는 죄를 짓는다는 것은 선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지성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지성은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력, 실천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것이 실종돼 있죠. 그야말로 지금의 현실은 미증유의 사태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정체성을 새롭게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 단테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까?

▲ 바로 진화된 인간이죠. 생물학적인 진화와는 다른 진화가 필요해요. 그것은 바로 도덕적인 진화와 종교적인 진화라고 생각해요. 도덕적인 진화는 인간과 인간이 원만한 유대관계를 맺도록 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자 배려입니다. 또 종교적인 진화는 인간의 힘을 넘어선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 곧 겸손함이죠. 이런 진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인간이 질적으로 진화하게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의 구원은 바로 진화이고 ‘신곡’은 그것을 위한 안내서라고 생각합니다.

-- 진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죠. 바로 읽고 쓰는 문화입니다. 도서관의 실종은 문명의 실종으로 이어집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언어로 사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죠. 그것으로 자기의 별,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죠.

또 단테가 순례에서 항상 길잡이를 따라가며 두리번거렸듯이 우리도 자꾸 두리번거려야 해요. 성찰해야 한다는 얘기죠. 앞만 보고 가면 자기가 삐뚤게 가고 있는지 모르거든요. 두리번거리고, 돌아서서 지나온 길도 보며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박상진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박상진 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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