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것은 신화일 뿐,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아유타라는 나라 자체가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허왕후 신화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고 1000년에 걸쳐 살이 붙은 끝에 사이비 역사학과 결합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책이 나왔다. 인도 고대사를 전공한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가 쓴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푸른역사)다.
허왕후가 왔다는 아유타를 오늘날 인도 북부의 아요디야라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그것이 왜 허구인지를 이야기한다. 아유타는 힌두의 라마야나 신화에 나오는 코살라국의 수도다. 불교를 대표하는 도시가 아니며 인도를 대표하는 도시도 아니다. 아유타라는 단어가 한반도에 알려진 것은 8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때가 되어야 이 단어가 한역된 불경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유타라는 말은 나말여초기 누군가에 의해 수로왕과 허왕후 이야기에 삽입된 단어일 뿐이다. 물론 인도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허왕후 신화는 삼국유사에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가락국기에 실려 있고 다른 하나는 파사석탑 설명에 실려 있다. 가락국기 쪽이 더 단순하여 더 오래된 설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사석탑 설화는 허왕후가 풍랑을 만나 길을 떠나지 못해 돌아와서 파사석탑을 실었는데 그러자 무사히 항해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고대 인도의 여러 가지 면을 들어 이 설화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한다. 또한 파사석탑이 김해 지역의 돌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이야기한다. 이 교수는 허왕후 신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나간다.
사실 이런 증명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애초에 신화였다. 역사적 사실과 일치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신화라고 할 수도 없다. 대체 신화가 왜 역사가 된 것인가? 바로 이 점이 진짜 어려운 부분이다.
이 교수는 그 과정을 추적한다.
이 일의 시발점은 아동문학가의 글이었다. 1977년 이종기는 '가락국탐사'라는 책을 낸다. 이 책 자체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 책은 당시 박정희정권의 민족주의적 기세를 타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는 아동문학가의 나름대로 순수한 의도에 의해서 역사적 사실처럼 윤색되었다. 소설가의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 이 정도는 용인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은 뜻밖에도 전문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바로 고고학 전공의 김병모 교수에게 큰 감명을 준 것이다. 김병모는 이종기의 상상에 역사를 덮어씌워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재구성했다. 그것은 1987년과 1988년에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고대에 한반도와 인도가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은 민족주의적인 감성을 자극했다. 이런 사실은 우리 한민족이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것 같은 착시를 준다. 중국을 통하지 않고 불교와 차가 들어왔다는 점도 중국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언론은 대중이 이런 것을 요구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 바로 기름을 부어 불길을 일으켰다.
대학교수와 중앙일간지라는 언론의 지원을 받고 허왕후 신화는 역사로 거침없이 둔갑해 나가기 시작했다. 역사학자들도 무비판적으로 받아쓰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 교수와 김태식 교수 등 인도와 가야사 전문가들이 비판 논문을 내놓았지만 이것은 학계 안에서 잠깐 맴돌았을 뿐 대중에게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바로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를 대중서로 집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쯤에서 신화가 역사적 사실을 그 안에 담고 있는 건데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한들 그게 무슨 문제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이 교수는 바로 그 점을 이 책 제10장 '사이비 역사학과 우파 민족주의'에서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요디야의 사리유 강가에는 허왕후 탄생비가 건립되어 있다. 2002년에 가락중앙종친회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이 비를 세울 때 당시 인도 집권 여당 인도국민당이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인도국민당은 힌두 민족주의를 이념으로 삼는 극우 파시즘 정당이다. 이들에게 위대한 힌두의 힘이 한반도에까지 미쳤다는 점은 좋은 선전거리다. 그런 파시스트들에게 동조하고 있는 것이 작금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이 교수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 연구는 연구실에서 이뤄지지만 대중을 향해야 한다. 연구실 책상 앞에서 연구하는 교수가 연구에만 전념할 뿐 대중화에 별 관심이 없을 때 일단의 정치 세력은 역사를 왜곡하여 정치 무기로 삼는다."
어디 인도뿐인가? 국정교과서로 신음하는 우리 현실도 전혀 다르지 않다. 오늘날 우리 현실을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인도와 불교에 대한 이해도 도와줄 수 있다. 칼럼에서는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이 한참 있으므로 필독을 권하는 바다.
[이문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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