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 동래구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 인문학 특강을 다녀왔다. 주제는 '공존의 인문학'이었는데, 당시 나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소수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유할 것인지에 대해 강연했다. 170여 명의 청중을 두고 진행되는 대중강좌였음에도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현장에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질문이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다수성과 소수성의 기준'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다수성과 소수성의 개념을 사유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하나 있다. 그것은 '다수자'와 '소수자'를 이해하고 호명하는 기준은 '양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인구통계학적인 절대량이 많다고 해서 다수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월등히 많지만, 비정규직을 두고 양적 다수성을 획득한 '다수자'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상가 질 들뢰즈는 이 부분에 대해 명쾌한 언급을 남긴 바 있다. 우리가 '다수적인 것'과 '소수적인 것'을 구분하는 준거는 '표준화된 상태'의 점유 여부라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 구조 속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거한 이가 '다수자'의 권위를 획득하며, 상대적으로 피지배적인 위치로 내몰리는 이들이 '소수자'의 취약성을 부여받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다수자는 표준화된 상태의 규율과 규칙을 소유한 지배적 기득권자이며, 소수자는 표준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한 채 '배제'와 '차별', 그리고 '착취'와 '희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피지배적 존재가 되는 셈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자리에서 '소수성'과 '다수성'의 원리를 사고하는 과정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타자에 대한 적대적 혐오를 완화하고 재사유하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키워드 중 하나는 '혐오'이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노동자 혐오, 장애인 혐오, 이주민 혐오 등 '다수적인 삶'과 다른 방식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류애'나 '공동체 정신'과 같은 거창한 말까지는 아니라더라도,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소수적인 삶'을 혐오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개입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강연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소개한 청보리 작가의 '원 뿔러스 원'을 예로 들어볼 수 있겠다. 이 웹툰은 사람들이 누구나 '두 개의 뿔'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뿔'의 수와 형태는 '정상'과 '비정상(병리)'을 분별하는 기준이 된다. 주인공 한도림은 뿔이 하나뿐이다. 그 때문에 도림은 학교 친구들에게 악마 취급을 받거나 비정상적 질병을 지닌 관심학생으로 분류된다. 이 작품의 기저에 근대 '우생학'의 폭력성(인간 유전자의 우열 관계를 식별하고 관리하자 했던)에 대한 비판이 내재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원 뿔러스 원'에서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배제와 추방이 '혐오'라는 무기를 통해 발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혐오/범죄는 '원뿔 테러'를 통해 구체화된다. 하지만 직접적인 '원뿔 테러'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일상화된 사회적 편견과 혐오('장애인이면 장애인답게 바닥에 딱 붙어서 불행한 인생을 살아라')이다. 세계적인 법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는 특정 집단을 추방하고 배척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라고 주장하였다. 혐오라는 감정은 단순한 사적 정서가 아니라 특권을 지닌 집단들이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고 더욱 명백히 하려고 하는 정치적 행위('혐오의 정치')라는 것이다. 그녀는 19세기 이후부터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불가촉천민, 하층계급 사람들은 모두 '육신의 오물'로 더럽혀진 존재로 상상되었으며, 이러한 폭력적 배제 시스템은 지금도 여전히 작동 중이라고 보았다.
'원 뿔러스 원'의 도림이나 원뿔 테러 피해자들의 부서지고 토막 난 삶에서 확인할 수 있듯, 혐오 발언은 한 개인의 인간성을 유충화하고, 다시 획일화된 정체성으로 호명하며, 또 이들을 무용한 사회적 존재로 철저하게 고립시킨다. 오해하지 말 것은 혐오 행위의 주체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혐오 발언은 지배집단이 피지배집단을 배제하거나 추방하는 사회심리학적 기제로 작동하며, 이는 철저하게 지배집단의 '다수성'을 영속화하는 정치적 행위로 수행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혐오 발언의 발화자를 검열하고 색출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통해 이득을 보고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과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인문학은 '혐오의 정치'를 향해 격발되는 '사유의 탄환'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강의가 끝나자 뒷줄에서 휠체어를 탄 학생이 앞으로 나온다.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수줍은 제안에, 내 사유의 탄창이 환하게 채워지고 재장전된다.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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