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전임 대통령 덕분에 이른바 장미 대선이 치러지는 중이다. 연인원 1600만 명이 참여했다는 촛불 민심이 이제 대통령 선거에 모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선거 구도는 큰 부침만 없다면 대체로 선거 당일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금의 관심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제부터는 선거 이후에 나타날 여러 상황에 대해서 고민해 볼 때가 되었다. 말하자면, 당선될 대통령에게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에 대한 이른바 숙의(熟議)와 심의(深意)가 필요할 때가 된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자신들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만 하면, 산적된 제반 문제들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안보위기, 경제적 불평등, 청년 실업, 교육격차와 사회적 소수자 문제 등등 겨우 5년에 불과한 임기 동안, 그 많은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친다. 유권자들도 다르지 않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기만 하면, 자신이 꿈꾸고 바라는 사회가 금방이라도 도래할 것처럼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5월 9일 이후 당선된 대통령이 5년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5월 9일 이후 나타날 촛불시위의 학습효과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일반 국민의 바람과 크게 어긋나게 되면 또다시 촛불이 타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는 한계를 경험하면서, 직접민주주의의 정치적 효능을 경험했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성숙에 많은 보탬을 주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어느 정도 새 대통령의 정치적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많은 기대와 희망은 실망을 낳기 때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탄핵국면으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다당제 체제에서 각 정당은 사활을 걸고 새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것이다. 그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들 것이다. 익숙했던 양당제가 아닌, 경험하지 못한 다당제 형태에서 펼쳐지는 정국은 국민에게 정치적 피로감을 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특히, 국민의 이익보다는 정파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진보와 보수의 대결 구도는 새 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일제' 만화영화와 그 아류가 전횡했던 필자의 어린 시절,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개구쟁이 스머프라는 유럽만화영화가 있다. 이 만화영화에서 파란색 피부를 가진 스머프라는 가상의 생물체는 '가가멜'이라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서로 돕고 협력하여 자신의 공동체를 훌륭하게 지켜낸다. 그래서인지 파파 스머프의 역할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명칭에서도 드러나는 바와 같이, 그는 스머프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역할은 자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스머프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그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하는 조력자에 그친다(물론 일부 페미니즘 학자가 지적하는 바, 파파 스머프의 역할을 가부장제적 온정주의의 전형이라는 논란도 있다).
다시 말해서 파파 스머프는 스머프 동산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부조화를 중재하는 한편, 다른 스머프들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외부의 가장 큰 적인 가가멜과 그의 고양이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도록 하는 인물이다. 그 당시 인기를 끌었던 '마징가Z'나 '짱가'등 일본 만화영화가 지구가 직면한 위기를 1인의 영웅 또는 그가 조정하는 로봇을 통해서 해소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를 다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영웅에 의한 위기 해소가 아니라, 모든 공동체 구성원의 합의와 참여를 통해 위기가 해소되는 형식을 띤다는 것이다.
어쩌면, 5월 9일 이후에 우리는 영웅탄생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영웅이 될 수 없다. 5년이란 짧은 시간에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따라서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한 대통령이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큰 기대를 접어야 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대통령 당선인도 자신이 만병통치약을 만들어내는 자리가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국민과 대통령일 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성공한 대통령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파파 스머프가 갖는 소박한 리더십,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도록 보살피며 이해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직면한 이 위기를 넘기는 최선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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