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웹툰으로 보는 사회문화'라는 교양 교과목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문학이나 영화로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과 변혁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대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스마트폰 콘텐츠인 '웹툰'을 통해 조금이나마 더 학생들과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웹툰(webtoon)은 '웹(web)과 카툰(cartoon)'이 결합한 조어로,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해 생산되고 향유되는 만화를 의미한다. 웹툰은 단순한 인터넷 만화가 아니라, '웹'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거점으로 기획되고 창작되며 소통하는 21세기형 서사 양식이다. 그러므로 활자화된 만화를 스캔해 인터넷 공간에 옮겨놓는다고 해서 모두 '웹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웹툰은 사용자가 손쉽게 접근하고 누릴 수 있는 감상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스낵(snack)형 콘텐츠'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층의 접근성이 높은 스낵형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웹 환경을 토대로 전송되는 만화가 단순히 오락적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웹툰의 서사 구조와 장르는 무척 다양하며, 그 속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와 문화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얼마 전 신작 '브릿지'를 발표한 강풀 작가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강풀이 새 작품을 내놓은 것은 2015년의 '무빙' 연재 이후 정확히 2년 만이다.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따뜻한 만남의 의미를 보여준 '순정만화',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공포를 다룬 스릴러형 미스터리물 '이웃사람', 광주5·18의 폭력과 역사적 부채감을 그린 '26년'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가 강풀이라는 작가에게 주목하는 까닭은 그의 작품이 발산하는 흥미성 때문만은 아니다. 강풀의 웹툰 텍스트는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끊임없이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작품(들)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 바이지만, 특히 근작 '무빙'(Daum 만화, 2015)에서 더욱 선명하게 확인된다.
'무빙'의 남자 주인공 '봉석'은 고등학생이다. 그에게는 중요한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공중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봉석은 그 사실을 꼭꼭 숨긴 채 살아간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반인과 다른 신체 조건과 역량을 지니는 것이 때로는 '장애'처럼 인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아들의 다리에 각반을 채우고 살도 찌우며 공중부양이 되지 않도록 조심시킨다. 여자 주인공 희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몸에 난 상처가 금방 회복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희수 역시 그러한 초능력을 감춘 채 살아간다. 그녀의 특별한 능력이 다른 이들에게는 '괴물'의 형상처럼 묘사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보면 '무빙'이라는 작품은 황당한 판타지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다소 비현실적 요소를 서사적 장치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굉장히 '리얼'한 정세적 조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봉석과 희수가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에서 확인된다. 봉석과 희수의 아버지는 모두 국정원의 북파공작원이다. 초능력을 가진 두 북파공작원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국정원을 그만두고자 하지만, 국가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두 가족은 국정원의 추적을 피해 숨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봉석과 희수의 고립되고 폐쇄적인 삶이란 결국 분단국가의 이념적 대결과 국제정치적 상황에 의해 결정된 셈이다. 물론 강풀의 '무빙'은 주체('나')를 구속하는 공동체의 조건 제시에 그치지 않고, 현대인의 관계 의미 자체를 새롭게 사유하고 있다.
주인공 봉석과 희수는 고등학교에서 만나게 된다. 각자의 고단한 사연과 숨겨진 능력을 공유하면서 점차 가까워진다. 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내적 비밀을 나누고 공유함으로써 세상과 단절된 고립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강풀의 따뜻한 작가 의식이 부각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가슴 속에 '말할 수 없는 비밀' 하나씩은 지닌 채 살아간다는 것.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중요한 방법은 비밀을 은폐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아니라, 누군가 한 명쯤은 그 사연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마음의 '든든함'을 얻는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어두운 밀실 속에 자신의 상처를 격리하는 폐쇄적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마음과 마음의 '움직임(무빙, moving)'인 것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자율주의 사상가인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는 타자와 그러한 관계 맺음을 '결속'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결속의 '브릿지(bridge)'를 놓는 마음의 무빙. 타자를 향한 무한한 마음의 움직임(무빙)이야말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생의 자원이자 구원의 방식이 아닐까. 그러므로 다시, 다 함께 무빙!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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