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세안문화원과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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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구 부산외국어대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

2017년은 한·아세안 관계에 중요한 해다. 1967년 출범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올해로 창설 50주년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10주년을 맞았다.

특히 부산에서는 한국과 아세안 간 교류 활성화의 교두보가 될 아세안문화원이 내달1일 역사적인 개원식을 한다. 아세안문화원은 2014년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후속사업으로 건립되는 것이다.

사실상 부산과 아세안 국가 간의 인연은 아세안 창립 훨씬 이전부터 맺어 왔다. 부산진구에 위치한 부산시민공원은 일제강점기에 연합군 포로수용소 감시원을 훈련시킨 노구치 부대가 있던 곳이다. 이때 포로감시원으로 강제징집된 조선 청년들은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지로 파견되었다. 그 숫자만 해도 3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많은 사람은 전쟁 후에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동남아에 머물면서 오늘날 동남아 한인사회의 제1세대로 뿌리내렸다.

아세안 국가들은 6·25 발발 시에 참전하여 우리를 도왔다. 특히 필리핀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지상군을 보내온 나라인데, 1950년 9월 19일 필리핀군이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부산항이었다. 태국은 6·25 발발 5일 만에 쌀 4만t을 지원키로 하는 등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참전 지원 의사를 밝혔으며, 5개월 만인 1950년 11월 7일에 첫 파병군이 부산항에 입항했다. 이들 참전용사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부산 남구에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유엔기념공원이 만들어졌다.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인연은 월남전(베트남전)으로 이어진다. 1960년대 말 월남전 참전용사들을 배웅했던 곳이 추억의 부산 제3부두이다. 이곳에서 청룡·맹호·백마부대 병사들은 남십자성 멀고 먼 월남의 전쟁터로 떠났다.

부산 지역이 경제 개발 초기에 섬유와 봉제 산업, 그리고 신발 산업을 통해 성장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기에 노동집약적 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부산기업들은 동남아 등지로 해외 이전을 본격화했다.

동남아에 나가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을 방문하면 유난히 부산과 경남지역 사투리와 억양을 구사하는 사람을 눈에 띄게 많이 만날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현재 부산에는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지역 사람들의 수가 2만 1997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37.8%를 차지한다. 또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필리핀 등 6개국 동남아국가 명예영사관이 설치돼 민간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필리핀, 인도네시아(센터), 인도문화원이 개설돼있다.

외교부는 한류 문화의 급속한 현지 확산을 통해 동남아에서 한국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동남아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지 않은 실정을 감안해 아세안문화원의 건립을 추진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부응해 아세안문화원은 주로 아세안 관련 전시와 공연 등으로 아세안의 문화를 우리 국민들에게 소개하고, 문화교류에 앞장서게 될 것이다. 더불어 지난해 아세안공동체 출범을 계기로 한국과의 경제교류 거점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데 아세안문화원이 부산과 아세안 국가들과의 역사적인 인연을 약간의 상상력이 가미된 스토리텔링 소재로 개발하고, 아세안 관련 유관단체를 효과적으로 네트워킹해서 중복적이고 다소 낭비적일 수도 있는 요인들을 줄여 나간다면 그 설립의 의미는 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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