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인사이트] 두 차례 연기된 브렉시트…새 총리 존슨은 공약 지킬까 (오피니언 2019.08.14.)
험난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정
브렉시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혼돈에 휩싸여 있다. 영국과 EU의 이혼합의서라 할 수 있는 탈퇴조약이 영국 하원에서 부결을 거듭한 끝에 급기야는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임기를 못채우고 물러났다. 브렉시트 때문에 총리가 교체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당초 2019년 3월 29일로 설정된 탈퇴일은 그 사이 두 차례 연기됐다. 브렉시트를 놓고 둘로 쪼개진 영국의 분열은 더 깊어졌고, 앞날을 점칠 수 없는 불확실성때문에 영국 경제는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4일 취임한 보리스 존슨 총리는 합의서 없는 이혼, 즉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파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10월 31일까지는 EU를 탈퇴하겠다고 공약했다.
의회민주주의의 모국인 영국은 19세기에 대제국을 거느리며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차대전 후 제국의 지위를 잃고 국제무대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던 이 섬나라는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U의 전신)에 뒤늦게 가입했다. 민족정체성이 유달리 강한 영국에서 ‘유럽’은 낯선 존재였고 축구공과 같았다.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은 툭하면 EU의 규제와 간섭을 질타하며 EU를 축구공처럼 걷어차곤 했다. 1975년에 이어 2016년 6월 23일 영국 유권자들은 EU잔류와 탈퇴를 두고 국민투표를 치렀다. 영국인들이 잔류를 선택하리라던 집권 보수당의 예상을 깨고 투표 결과는 EU 탈퇴, 즉 브렉시트로 결론 났다. 탈퇴와 잔류의 표차는 불과 3.8% 였다. 영국이 브렉시트로 두 동강 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연합왕국 영국을 분열시킨 브렉시트
영국의 분열은 지난 3년간 더 악화됐다. 지난달 18일 발표된 유럽정치매체 폴리티코이유(politico.eu)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딜 브렉시트를 원하는 유권자와 노(No)브렉시트, 즉 잔류를 원하는 유권자가 거의 반반을 기록했다. 60대 이상의 유권자 가운데 3분의 2는 브렉시트를, 같은 비율의 20대는 잔류를 원했다. 지역별로 보면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잔류,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탈퇴를 선호한다.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란 정식 국가명칭을 무색케 할 정도다.
영국과 EU는 지난해 12월 탈퇴조약에 서명했다. 존슨의 전임자 테리사 메이는 올 해들어 세 차례 하원에서 탈퇴조약의 비준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허사였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국경 관리에 관한 안전장치, 즉 ‘백스톱’(backstop)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 간에는 현재 국경통제가 없다. 그러나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국경통제가 다시 도입된다. 하지만 국경 장벽이 다시 세워져 통행과 통관을 엄격히 통제하는 것은 영국과 EU 모두 바라는 바가 아니다. 1998년 평화협정으로 힘겹게 달성한 북아일랜드 평화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탈퇴조약에 따르면 영국의 EU탈퇴 후 22개월 정도의 과도기(이행기) 를 두게 된다. 이 기간동안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을 지금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보장하는 새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과도기가 지나도 영국은 EU의 단일시장에 제한없이 접근토록 한다는 안전조항이 백스톱이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hard Brexiter)들은 이럴 경우 영국이 계속해서 사실상의 EU식민지로 남게 된다며 탈퇴조약을 부결시켰다.
지난 3월 말 하원에서 탈퇴조약이 세 번째 부결됐을 때 집권당에서 최소 40명의 반대표가 나왔다. 이처럼 집권당 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신속한 탈퇴를 주장하는 강경 브렉시트파와, 손실을 최소화하고 EU와 긴밀한 관계 유지를 선호하는 연성 브렉시트 파 간의 갈등이 매우 크다.
브렉시트 혼란은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움직임에도 다시 불을 붙였다. 2014년 9월 스코틀랜드는 주민투표에서 10% 차이로 영국 잔류를 결정했다. 스코틀랜드는 2016년 국민투표에서 62%가 EU 잔류를 지지했을 정도로 유럽통합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영국 연합왕국을 구성하는 한 지역인 잉글랜드(국민투표에서 53%가 탈퇴 지지)가 주도한 브렉시트 지지로 스코틀랜드는 원치 않는 이혼을 당할 처지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최근 2년 안에 주민투표를 실시할 법안 준비를 마쳤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 잔류가 독립보다 오차범위 안에서 근소하게 앞선다.
이처럼 얽히고 설킨 상황에서 보리스 존슨이 총리가 됐다. 그는 당수 선거전에서 가장 큰 쟁점인 백스톱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울러 10월 31일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EU를 탈퇴하겠다고 공약했다. EU와 탈퇴조약 수정에 합의하지 못하면 그냥 튕겨져나오는 ‘노딜 브렉시트’(no-deal Brexit)도 공언했다. EU는 백스톱에 관한 재협상은 없다며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왔다. 총리가 바뀌었다고 EU가 이런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집권 보수당 하원 의원의 70%는 경제에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는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한다. 이들은 제1 야당인 노동당과 함께 노딜 브렉시트 저지에 필요한 각종 수정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의회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10월 31일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투자은행 ING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 가능성을 20%로 잡았다. 이전처럼 하원에서 탈퇴조약이 계속 부결되고 노딜이 저지된다면 교착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기 총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2차대전 후 영국 정치에서 존슨처럼 총선없이 총리가 된 인물이 2년 안에 총선을 치르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어쨌든 영국과 EU는 10월까지 힘겨운 논쟁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10월 17일부터 이틀간 브뤼셀에서 예정된 EU이사회(회원국 수반들의 회의)가 분수령이 될 것이다.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영국의 EU탈퇴가 연기된다. EU는 이미 두 번이나 이를 늦춰줬기에 다시 연기 요청을 받으면 가시적인 시간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조기총선이나 제 2국민투표가 이에 해당한다. 노동당과 가장 친유럽적인 자유민주당이 EU 잔류·탈퇴에 관한 제2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만일 조기총선에서도 정치적 교착 상태를 타개하지 못할 경우에는 마지막 선택으로 국민투표가 치러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세계경제 위협하는 초불확실성 브렉시트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23일 노딜 브렉시트를 미국의 보호무역 및 통상전쟁과 함께 세계경제의 주요 리스크로 적시했다. 브렉시트 혼란이 야기해 온 극도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를 꺼려왔다. 영국에 소재한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이미 일부 인력을 프랑크푸르트나 더블린으로 이전해 위험분산을 꾀했다. BMW나 닛산은 일부 생산공장을 독일로 이전하거나, 일부 모델의 영국 내 생산을 중단했다. 영국 경제는 타격을 받고 있다. 2017년 서방선진7개국(G7) 회원 가운데 유일하게 전년도와 비교해 경제성장률이 하락했다. 또 최소한 3~4년 간 EU보다 경제성장률이 뒤처질 것으로 다수의 경제연구소들이 전망했다. 무역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제1 교역상대국인 EU를 박차고 나가려하지만,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영국에게 유리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영국 경제는 하락세에 접어들었는데 신임 총리는 대규모 감세와 확대 재정정책을 약속했다. 브렉시트 단행과 분열된 국론의 통합, 그리고 선거에서 노동당을 이기겠다는 게 그의 취임 일성이다.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아마도 그는 영국사에서 최단명의 총리로 기록될 확률이 높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케임브리지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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