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의 반란` 이끌어낸 `딸들의 반란`
[연합뉴스 2005-07-21 15:58] <br> <br>관습도 변화 흐름 외면 못해…대법원, 정책법원 역할 제시 <br>(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 대법원이 21일 내린 이른바 `딸들의 반란` 판결은 종중 내 출가 여성의 지위 뿐 아니라 관습의 변화에 따른 종중의 현대적 의미와 재산분배 문제는 물론, 대법원의 기능과 역할 등에 대해 다양한 시사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br><br>대법원이 "사회 환경과 국민의식의 변화로 기존 관습에 대한 국민의 법적 확신이 약화됐다"며 기존 판례를 뒤집은 것은 진보적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민법이 바뀌고 호주제가 위헌결정을 받은 뒤에 나와 때 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br><br>◇ 대법원 판결의 취지 = 대법원 판결은 부계 혈통 중심의 기존 종중 문화는 우리사회의 환경과 국민의식의 변화로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려우며 남녀평등 원칙의 문화가 사회관습으로 새롭게 자리잡았음을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br><br>우리나라 성문법은 종중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원은 `실정법`이 아닌 `관습법`의 영역에서 사회관습을 감안해 판례를 통해서 종중의 의미와 범위를 규정해왔다. <br><br>기존 대법원 판례가 규정한 `종중(宗中)`이란 공동선조의 분묘 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간 친목을 위해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를 종원으로 구성되는 종족의 자연적 집단이라는 것. <br><br>같은 공동선조의 후손이라도 성년 여성은 종원이 될 수 없다는 게 기존 판례의 입장이었고 이번 원고들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충실한 하급심에서 연패했다. <br><br>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1970년대 이후 우리사회 환경과 국민의식의 변화로 사회 구성원들의 법적확신이 약화됐다"며 관습의 변화를 선언했고 "개인 존엄과 양성평등 원칙에 따라 가족 내에서 남녀가 차별받지 않는다"는 법적 원칙도 천명했다. <br><br>변화의 흐름에 따라 관습이 변한 이상 종중의 존재 목적과 본질도 과거와 다르게 해석될 수 밖에 없고 성년 여자를 배제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게 최고 법원의 해석인 것이다. <br><br>별도 의견을 낸 6명의 대법관들도 "성년 남자와 달리 성년 여자들은 종중가입을 원하는 경우에 한해 종중 구성원이 된다"면서도 원칙적으로 기존의 성년 남자 중심의 종중 문화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는 데는 동의했다. <br><br>◇ 대법원 판결 배경 =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단순히 `여성의 지위가 과거보다 상승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외에도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이 과거의 관습적 제도에 수용되고 융화되는 과정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br><br>관습은 필연적으로 변하는 것이며 법원의 판례를 통해 강고하게 확립된 관습적 공동체의 규정이라도 이 같은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국회의 민법 개정과 헌재의 호주제 위헌 결정, 그리고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함께 보여준 셈이다. <br><br>특히 종중원 지위확인 소송이 종중 재산 분배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여성들이 추상적 이념으로서의 지위향상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가장 실제적 권리인 재산권을 적극 요구해 쟁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br><br>`공동선조의 분묘 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간 친목도모`라는 종중의 목적은 외관상 `의무`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권리`가 놓여있었고 이는 국토개발에 따른 부동산 가치의 상승으로 인해 재산권의 형태로 구체화한 것이다. <br><br>피고측이 "여성들에게 종중 재산권을 인정하면 종중재산 보호와 유지는 어렵고 여성들에게 제사 의무 등을 요구하기는 어려워져 결국 종중의 존립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고 우려하는 것도 종중내 남성 중심의 재산권 문화를 방증한다. <br><br>◇ 대법원의 정책법원 역할 = 대법원은 이번 판결 심리를 위해 사상 최초로 공개변론을 실시하는 등 정책법원으로서 역할을 다방면으로 모색해왔다. <br><br>2년여간 이번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은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자`는 논리와 `법률관계의 혼란을 막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를 두고 대법관들과 재판연구관 사이에서 적지 않은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br><br>재경 법원의 부장판사가 이번 판결을 연구하면서 일반 국민과 전문가 집단을 상대로 의식조사를 실시했다는 사실은 이 같은 고민의 일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br><br>대법원이 `법적 문제 판단은 판사들만의 권한`이라는 강박을 벗고 국민의 소리에 적극 귀를 기울인 결과 기존 판례를 바꿔야 한다는 다수의 의견(일반인 69.7%, 변호사ㆍ교수 등 전문가 64%)이 `정책법원`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br><br>하지만 이번 판결이 이미 국회의 민법 개정과 헌재의 호주제 위헌결정 이후에 뒤늦게 나왔다는 점에서 사법부가 사회적 이슈를 자신있게 먼저 치고 나가지 못하고 `눈치보기`와 `뒷북치기`를 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br><br>한편에서는 수장(首長) 교체를 앞둔 법원이 최근 시민단체와 언론 등으로부터 보수성에 대한 비판과 개혁 요구를 받게 되자 보수성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이번 판결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br>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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