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염
감염
정채원
치료약도 백신도 없는 전염병처럼
사랑이 들끓어도
죽진 않았지
아니, 죽은 사람이 없다는 건 아니지
숨도 쉬고 커피도 마시고 장사도 하지만
다만 열은 내렸지만
사태 이전보다
영혼의 눈이 십리쯤 들어간 사람
오랜 세월 굳어진 돌덩이처럼
다시는 모래로 흩어지지 않으려는 눈빛을 가진
너를 읽고 난 후
밤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다시는 강 건너로 돌아가지 못한다
참호도 대포도 없는 전장에서
나는 죽도록 달리다가 죽겠지만
아니, 운 좋게 살아남는다 해도
이전과 이후 사이
꿈쩍 않는 강화유리 벽에 몸을 던지고
또 던지다 잠을 깰까
해열제에 취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
정지신호 지나
누군가 다가오면 멀리 돌아서 가는 길
⸻월간 《現代文學》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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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원 / 1951년 서울 출생. 1996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일교차로 만든 집』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