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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명선

 

 

 

정오의 손가락이 꽃의 주름을 만지자

향기가 탱탱하게 부풀어 올랐다

 

너는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고

나는 앞만 보고 걸었다

 

음악이 떼 지어 헤엄치는

꽃의 계절이었다

 

발자국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말없이

 

너는 너의 방향으로

나는 나의 방향으로

 

차례대로 열리는 꽃잎처럼

너의 길은 순조로웠다

 

닫힌 문의 바깥에서

감춘 표정으로 너를 앓았다

 

너는 어디에나 있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날아오르는 새였다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가벼운 농담처럼 지워졌다

 

너에게 없는 나를

나에게 없는 오늘을 반복했다

 

무리지어 핀 꽃들이 웃었다

나를 때렸다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2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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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선 / 1965년 부산 출생부산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9년 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시집오후를 견디는 법.

BUFS2020. 5. 28조회수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