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에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좌파 성향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극우 성향의 자이르 메시아스 보우소나루현 대통령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제 2023년에는 브라질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3선 대통령이 탄생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라고 얘기했던, 퇴임 시 80% 넘는 지지율을 가졌던, 그리고 퇴임 후 부패혐의로 580일 동안 수감 됐다가 무혐의 처분된 전임 대통령이 다시 소환됐다.
금속노동자 출신의 룰라가 ‘미래’를 보고 아래-위 계급을 아우르는 ‘화해’와 ‘합의’의 정치를 했다면, 군부 출신인 보우소나루는 정치 전략으로 막말을 이용한 도발을 이용해서 기존의 사회시스템을 증오와 분열을 통해 파괴하고 브라질이 추구해야만 하는 원래의 가치를 신, 가족 그리고 조국이라는 ‘중세적 가치’에서 찾으면서 브라질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나 부적격자 1인이 대통령에 선출됐다는 게 바로 국민의 실수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가 근대성의 산물이자 당위로서의 기본 개념인 ‘민주주의’ 담론이 파 놓은 수로를 따르기만 하면 브라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상이한 방식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독립 과정에 있어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과 다른 길을 걸었지만, 식민지 태생의 백인계급이 계몽주의를 기치로 걸고 공화국을 수립한 점은 같다.
브라질 국기에 글자로 적혀 있는 ‘질서와 진보’가 이를 증명한다. 유럽에서 독립하고자 할 때 대체할만한 독자적인 제도를 찾지 못하고 유럽처럼 시민권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를 수단으로 사용했다. 문제는 이 민주주의가 헌법에 명시된 원칙을 현실 세계에 적용할 수 없는, 즉 ‘시민’이 부재한 형식주의적 민주주의로 출범했다는 점이다.
즉, 봉건주의 구조를 낀 채로 민주주의가 도입됐고 이를 근간으로 자본주의가 작동하게 됐다. 이처럼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특정한 역사적 지평 아래서 일정한 현상들을 선택, 분류하고 배제하면서 나름의 체계적 편제를 이뤄왔다.
2018년 라티노 바로메터 보고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브라질 국민들의 정치문화 역시 신념이나 정의를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체계가 국가와 가계 경제에 얼마만큼 도움 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시 말해서 ‘빵으로 잃기 쉬운 민주주의’, 즉 포퓰리즘이 브라질 민주주의의 또 다른 얼굴인 셈이다. 브라질 국민을 소득 수준 기준으로 상위 10%, 중위 40%, 하위 50%로 나눴을 때, 브라질은 정권을 좌파가 잡던 우파가 잡던간에 상관없이 총소득의 60% 정도를 상위 10%의 특정 엘리트 계층이 독점해왔다.
다시 말해서, 좌우, 진보와 보수 이데올로기를 떠나 중위와 하위를 합친 브라질 국민의 90%가 국부의 40%를 나눠 가져야 한다. 브라질의 소득 상위 10%는 누가 정권을 잡던 간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제도가 불공정하게 기능할 수 있게 만드는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룰라가 집권했던 시기(2003~2011)도 마찬가지였다. 룰라의 등장으로 가장 큰 피해의식을 느낀 계층은 도시에 거주하는 백인 계통의 고학력 중하위 계층이었다.
빈곤층은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에 힘입어 실질소득이 향상 됐지만, 중산층은 자신의 위가 항상 상위 10%에 막혀있고, 아래로부터의 계층상승을 목격하면서 이중으로 박탈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이런 분노가 2018년 대선에서 표출돼 보우소나루가 등장했다. 1964년 군사쿠데타 상황과 판박이었다.
2022년 룰라의 당선은 좌파의 승리 또는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닌 진정한 내전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보우소나루 이전에도 보우소나루들은 존재했다. 브라질의 진짜 위기는 2002년 룰라의 대통령 당선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 반발로 음지에 있던 ‘보우소나리즘’(Bolsonarism)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국민의 단일성을 배타적인 ‘우리’로 강화시켜,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국가를 구축하는 시도인 ‘보우소나리즘’은 ‘보우소나루’라는 메시아의 입을 통해 군중에 동조효과를 낳으면서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브라질 정치지형의 변화를 살펴보면, 좌우 진영에 상관없이 국가가 국민의 신뢰를 잃을 때 민주주의가 의심되고 그 결과 검증되지 않은 위험인물이 얼마든지 대중의 인기를 얻고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선출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바로 20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왕좌로 돌아온 룰라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