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은 정치에서 "완벽한 유니콘"을 찾곤 한다. 적을 타도할 수 있는 완벽한 수. 내부적 결집력을 옹호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을 말이다.
얼마 전 푸틴의 '두뇌'로 알려진 러시아의 극우 정치이념가 알렉산드르 두긴의 격양된 모습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관계의 새 국면을 보여준다. 지난 몇 년간 크림반도 사태 및 국제질서에 있어서 서방문명 중심 가치관에 대해 가차 없이 날을 세우던 그의 비판의 이면에는 러시아의 제국주의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잔혹함이 짙게 깔려 있다. 현재 러시아 내에서 우크라이나 침략을 '전쟁'이 아닌 '특수작전'이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이를 전쟁이라고 일컬을 경우 최대 15년간 감옥에서 보낼 수 있다고 하는 목소리도 이런 강경한 견해에서 비롯된다. 1990년대 초 구소련 몰락 이후 불어오던 자유의 바람은 다시 그 방향을 틀어 자국 내 언론 및 정치의 자유를 점차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러던 와중 두긴의 개인적 삶이 두 국가 사이 갈등에 조명된 것은 그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해 오던 딸 다리아 두기나가 탑승한 차량이 갑자기 폭파되면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경한 제국주의적 견해를 전해 오던 그녀의 사망은 또 두 국가 간의 양극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이 죽음의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고 주장하고, 우크라이나 측은 이것이 '자국민 죽음 시리즈'의 시발탄이라고 한다.
두긴의 견해를 요약하자면 그는 무엇인가를 반대하는 것이 사람들을 통합하고 우리가 찬성하는 것이 우리를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하는 것을 국가정책이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 이념의 핵심이다. 그의 유라시아 세계관의 중요한 측면은 서구문명의 절대적 부정이며, 유라시아인들이 보기에 자유주의 이념을 가진 서구는 절대 악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권 및 서구식 '정치적 올바름' 등은 현대사회의 짐승이며, 현재 이 문명의 충돌 및 국제질서 위기를 전복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한다.
그의 주장에서 몇 가지 흐름을 짚을 수 있다. 우선 그의 주장에는 인류가 잔혹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되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인류적 가치가 결여된 그의 이념에는 '자유' '평등' '존엄성' 대신에 서방의 헤게모니를 부순다는 진영논리가 강조된다. 또한 두긴은 자신이 본 퇴폐적인 서구의 멸망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유라시아적 가치를 대변하는 러시아의 극우주의적 비전이 중요하다. 그의 정치적 상상력에는 왜 특정 인류애적 가치를 어떠한 이유로 옹호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보다 과거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노스탤지어에 취해 잔혹함을 옹호하는 것이 눈에 띈다. 어떠한 면에서는 결국 극우가 쫓는 완벽한 과거의 허상과 극좌가 쫓는 완벽한 미래의 약속이 위험하게 일치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에서는 유니콘과도 같은 완벽한 이상이나 묘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정치'에 '완벽'은 없을뿐더러 애초에 유니콘은 우리의 이상 속에서만 살기 때문이다. 정치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이상'의 감언이설을 바라보고 가는 것보다 미완한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결국 앞으로 나아가려면 완벽한 유니콘을 조우하리란 생각을 버려야 하는 것 아닐까.